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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투데이] “그 이의 노력과 마음이 사람들의 심장을 툭툭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영등포장애인복지관 인권생태계팀 연재 …
24-08-26 12:05 15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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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투데이]


장애는 극복해야 할 무엇이 아니다.

장애를 가진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2024 파리 ‘비장애인올림픽’이 끝났다. 그렇지 않아도 뜨거운 8월인데, 어딜 가나 올림픽 이야기로 뜨거운 여름이었다.

뉴스부터 온갖 SNS를 뒤덮은 올림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이기건 지건 간에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 자신도 끝내 극복한 참가 선수들의 역경 극복 드라마, 그 이의 노력과 마음이 사람들의 심장을 툭툭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올림픽에 별 관심이 없다. 굳이 찾아서 보지 않는 나인데도 올림픽 기간에는 자연스레 내 귀에 들리고 내 눈에 보인다.

왜냐고? 온갖 군데에서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어째서 ‘비장애인올림픽’이라는 말은 쓰이지 않는가?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대한민국 국가대표 탁구 경기를 보게 됐다. 

그런데 국내 선수가 오른팔이 없는 브라질 선수와 상대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아마도 의식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철저하게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인간이니) ‘어? 장애인올림픽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찰나의 생각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그 탁구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 선수가 이겼는지 한 팔로 탁구 치던 브라질 선수가 이겼는지는 중요하지도, 관심도 없다. 

그런데 다음날, 올림픽에 대한 대한민국 스포츠 기사가 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공영방송인 KBS 기사는 “불가능은 없다…2024 파리 올림픽, 장애와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써 내려간다.


4년마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승부를 겨루는 지구촌 대축제, 올림픽. 결과에 상관없이, 다양한 심신의 장애들을 극복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곤 합니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보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과정’ 자체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장애를 이겨내고, 결과보다 과정이 아름다웠던 선수들의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KBS 2024 파리 올림픽 뉴스 중에서 발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장애를 극복하고 수많은 비장애인들에게(장애인도 포함이겠지만) 진한 감동을 준, 장애를 가진 선수들의 이야기에 국내 언론들은 집중한다. 

그리고 참 끈질기게 한결같이 그 선수의 장애 여부에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준다.

기사의 대부분은 “장애를 극복하고~ 극복하고~ 극복하고~”로 마무리된다. 항상.

“그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지, 장애 따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장벽이 될 순 없지, 극복~하면 되니까 말이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런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대한민국 언론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메시지가 한없이 불편하고 전혀 감동스럽지 않다. 

올림픽이 비장애인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으로 구분돼 진행되는 것도 불편하고, 장애인올림픽은 장애인올림픽이라고 부르면서 비장애인올림픽은 그냥 올림픽이라고 부르는 것도 불편하다. 

내가 프로불펀러라서 인가? 아니면 극복해야 하는 것이 ‘장애’라서 인가? 아니면 왜 유독 ‘장애’를 특별한 무엇처럼 구분하는 것에 대한 불편인가?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찔린다. 곰곰이 생각하는 와중에 저 깊은 의식 속에서 떠오르는 대화가 있다.


장애 정체성 압도하는 사회에서 장애 극복하라고~?

며칠 전 나의 장애인 친구이자 장애인권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진과의 대화가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나는 수진에게 물었었다. 

‘비장애인인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기를 써도 장애 정체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거겠지?’ 하고 말이다. 

이미 질문 자체에 그리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는 하다. 

왜냐하면 정체성이라는 것은 상당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 자기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함의하고 있어 어떤 한 존재의 본질 또는 이를 규명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수진이 답했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복잡한 거지. 그 사람의 성향, 살아온 경험,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환경 조건들이 어우러져서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거잖아. 

아무리 당사자와 함께 운동하고, 같이 한다 하더라도, 이미 당신이 비장애인으로서 살아온 경험치와 장애라는 조건은 일상의 삶 속에서 써 내려간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알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서, 일자리를 구한다고 했을 때, 이 사회에서 여성이 일자리를 구한다고 했을 때 당신 같은 경우 나이, 여성, 미혼 등의 이유로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렵더라도 몸을 쓸 수 있는 일(편의점, 택배, 식당 등)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아! 

근데 내가 센터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구한다고 했을 때 난 당신과 같이 여성이고 당신보다 나이도 적지만 ‘장애’라는 무거운 조건이 있기에 이 조건 하나만으로도 이 사회에 압도당하거든. 이런 상황에서 과연 당신이 장애가 있는 나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장애 정체성은 단순히 개인을 대상으로 말하는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일컫는 거라고 생각해.” 역시 수진이었다.


기준이 다른 세상

2024 파리비장애인올림픽 기사에서 나를 프로불편러로 만들어 준 것의 실체를 알았다. 

바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정체성을 극복해야 하는 것처럼 발화하고 그것에 감동하는 사회가 나는 참 불편하다. 

게다가 왜 유독 ‘장애’를 극복하라고 하는건지,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아니,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기준은 같아야 하는데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기준은 항상 비장애인이 기준이다. 

기준이 다른데 왜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가? 아니 장애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극복하는게 왜 감동인가? 


당신 같으면 당신의 정체성을 극복하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장애는 극복해야 할 무엇이 아니다. 장애를 가진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정체성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참고로 지난 2023년 8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 극복’이라는 표현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편견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을 고려해, 

해당 표현이 사용된 「장애인 복지법」 제56조, 「00광역시 각종 포상운영 조례」 제22조 등을 개정하고, 

해당 표현이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홍보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 2024 인권 곁으로는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 인권생태계팀에서 연재하는 칼럼이다. 

보편적 권리로서 의사소통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매월 다양한 주제와 소제로 풀어보는 코너이다.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 인권생태계팀 「인권 곁으로」


출처 : 영등포투데이(https://www.ydp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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