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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투데이]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24-08-26 17:09 19회 0건

인권생태계팀에서는 의사소통권리에 대해 지역사회에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서 지역언론사인 영등포투데이에 매월 의사소통권리를 주제로 칼럼을 투고하고 있습니다.  


2024년 6월 칼럼은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입니다.


[영등포투데이]  2024 인권 곁으로는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 인권생태계팀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보편적 권리로서 의사소통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매월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풀어보는 코너입니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반짝이는 박수 소리’라는 말에서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들었던 공감각적 심상이 떠오르진 않는가? 

사실 이는 문학적 표현보다는 실제 존재하는 일상과 세계의 한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농인의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청인 자녀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 당사자인 이길보라의 책 제목이다. 

농인이 모이는 세계적 엑스포에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사이 속에서 

‘농인들이 양 팔을 들고 손바닥을 반짝반짝 좌우로 돌리며 시각적인 박수 소리를 만드는 것’을 반짝이는 박수 소리라 표현한 것이다. 

지난 6월 3일은 농인의 날이었다. 이번 칼럼은 농인과 코다에 관련된 영화와 책과 함께 의사소통의 권리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오롯한 세계를 인정할 때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결함이 아닌 고유함이 된다

“나는 손으로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세상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왔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엄마, 아빠가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입말 대신 손말을 쓰는 것이, 입술 대신 얼굴 표정을 미세하게 움직이는 수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랬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오히려 ‘장애’ 혹은 ‘결함’이라고 불렀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길보라』


오랜 시간 수어는 수화로 불렸다. 수화는 음성 언어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농인의 고유한 언어다. 

그리해 ‘수화언어’ 수어로 부르고 있다.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 제 1장 총칙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이 법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그러나 비장애,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수어는 농인의 고유한 언어와 세계로 인식되기보다 ‘듣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수단’이라고 인식되곤 한다. 

이는 수어를 ‘음성 언어를 대체하는 부차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착각하게 한다. 

청각장애인이 더 많은 소통을 하기 위해 구화 습득, 인공와우 수술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게 한다.

농인이 비장애인의 입모양을 보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면,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청력이 향상되면 정말 더 좋은 소통을 할 수 있는 걸까? 

의사소통의 권리는 정상성을 기준으로 다수의 정상성에 맞추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손상을 가진 사람이 손상이 없거나 비교적 덜한 사람에게 맞추는 것은 농인이 자신의 의사소통에 대해 결정할 권한과 기회를 박탈시키는 일과 같다. 

실제로 구어만을 강요하는 방식의 교육 속에 놓이다 수어를 배울 적절한 시기를 놓치고, 청인 중심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며 결국 두 가지 언어 모두를 원활히 사용하기가 어려워지는 농인 당사자들의 경험을 통해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만 ‘언어’인가, ohmynews, (2023.11.14.)』 

사회통합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방식이 어느 한쪽으로 흡수되길 강요한다면 이는 사회적인 권력이나 위계, 불평등 구조로부터 오는 ‘획일화’에 가깝지 않은가?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보여주는 오롯한 세계, 그 오롯한 세계가 결함이 아닌 고유함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세계를 함부로 허물고 규정하는 것을 경계하는 ‘우리’가 필요하다. 

이미 오롯한 세계에 손상, 결함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누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바라보자.


두 세계의 공존이 무겁지 않도록 쉽게 스치지 말기

“나를 일컫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 부모의 장애를 나 홀로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때부터 나는 내가 겪은 일련의 경험들이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길보라』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 코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중 한국 작품 ‘나는 보리’가 있다. 

농인의 가족들 사이에서 청력을 잃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 보리. 

앞서 소개한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도 농문화와 청인 문화 사이의 정체성 혼란의 경험이 적혀있다.

실제로 코다 당사자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가정 내의 부동산의 계약, 금전 관리 등의 결정에 있어 통역을 해야 한다. 

세상은 너무나도 비장애 청인 중심이다. 어딜 가든 청인의 의사소통이 지배적이며, 농인이 청인의 기준과 방식에 맞추길 강요받는다. 

이에 따라 코다에겐 어떠한 책임감이 ‘지워진다’ 이는 영화 코다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농인 가족들 사이 청인인 딸이 자신의 삶의 방향과 농인 가족 구성원과 세상을 연결할 이음새가 되는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면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워지는’ 어떠한 ‘책임’에 관해 혹 자는 연민 섞인 눈으로 책임의 무게에 대한 걱정, 염려, 바르고 착하게 살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책임의 무게’에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농인과 청인의 사이를 이어주는 코다의 존재에 우리는, 사회는 그저 안도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으로 쉽게 스쳐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존엄할 권리를 가진다는 대전제에 공감하면서도 내 의사를 내가 직접 전달하는 것에 많은 제약을 경험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다수에 맞추어 비슷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이미 오롯한 세계에 결함과 손상이란 이름을 쉽게 붙이고 있진 않은가?

우리는 불평등함을 불행함으로 희석시킴으로써 불평등을 개인에게 오롯이 부과하는 방식을 취하진 않았는가?


농인도, 코다도 홀로 짊어지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해보는 6월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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