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희 기자
승인 2019.04.15 21:50
“(활동지원)월 70시간은 하루에 두 시간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 한 끼밖에 먹지 못했습니다. 당시 국민연금공단 직원이 이의신청 했더니 ‘왜 이 시간이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혼자 못 먹는데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딨냐’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장애등급이 2급이어서 더 이상은 줄 수가 없다’, ‘서비스를 받으려면 장애등급 판정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속상하고 열이 받아 많이 울었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와 장애등급제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당사자가 필요한 만큼 요구하는데 어떻게 상태를 보지도 않고, 그냥 등급만 으로 판정할 수 있습니까.
장애등급으로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해 돌아가신 분들도 많은데, 저도 그렇게 될까봐 많이 두렵습니다. 하루 빨리 장애인등급제가 진짜로 폐지돼 모두가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제대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봄 씨(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탈시설 당사자)-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광화문에는 또다시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하 420공투단)은 15일 서울시 광화문 지하 해치마당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기원!-달(Moon) 맞이 광화문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 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1,842일간 목소리를 내던 자리와 멀지 않은 곳이다.
2017년 8월 25일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부양의무 기준을 단계적 폐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광화문 역사 안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장애계는 또다시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420공투단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와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성실하게 협의했다.”며 “그러나 재정과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의 예산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활동지원서비스의 단가가 오른 자연증가분을 반영한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했다. 정부는 올해 예산이 전년 대비 25%를 증액(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했다고 선전할 뿐.”이라고 질타했다.
“청와대에서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민사회단체가 만나는 자리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대통령이 장애계와 만나겠다는 약속은 뭉개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이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냐’고 했다. 주어진 3분이라는 시간동안 어떻게 말해야 우리의 진심이 잘 전달될까 싶어 연습했다. 국민명령 1호, 장애등급제 폐지하겠다는 약속을 우리는 사무실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았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후보시절 열망, 기대, 장애인과의 약속, 이것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는 ‘투쟁보다 객관적·합리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라’고 했고, 우리는 민관협의체에 참여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협의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이 잘렸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기획재정부에게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하라고 건의하면 안 되냐고 이야기 했다. 이 말은 현장에서 웃음으로 넘어갔고, 언론에도 짧게 나오는 것으로 끝났다. 불쾌하기도 하고, 대표로 갔는데 내 말이 잘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미안했다. 투쟁하지 않으면 도저히 만나지지 않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함께 투쟁해야 할 몫만 남은 것 같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옥순 사무총장-
420공투단은 장애등급제 폐지와 함께 활동지원서비스 확대 등을 포함한 장애인복지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기획재정부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절대로 만나면 안되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면담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 한명희 사무국장은 사례를 통해 ‘예산 반영 없는 정책은 말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사무국장은 “한 여성 발달장애인은 함께 살던 고령의 어머니가 수술로 요양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이 되자 혼자 남겨졌다.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면서 주간활동서비스와 개인별 지원체계 마련이 법으로는 돼 있지만 예산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지원체계를 마련하라고 했더니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잠깐이라도 받을 수 없냐고 물었더니 자립해서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고 하더라. 사실상 어떤 요구도 제도로서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서비스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결국 서울시 복지정책과에 요구해 임시로 쉼터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420공투단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기 위한 예산 반영을 요구하고자 기획재정부 홍남기 장관을 만날 것과 함께, 20일까지 농성을 이어갈 계획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오는 7월 1일부터 기존 장애등급제를 대체해 시행되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시행령 안 제20조의 3 및 제20조의4, 시행규칙 안 제18조의2 및 제18조의3)와 관련해서도 날선 목소리를 냈다.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는 활동지원급여, 보조기기 교부, 거주시설 이용, 응급안전서비스를 신청하는 경우 적용된다.
420공투단은 “문재인 대통령은 탈시설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거주시설 입소를 원하는 장애인과 그 가족이 있다는 핑계로 거주시설 신규 입소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장애등급제라는 낙인을 도구 삼아 장애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장애와 빈곤의 문제를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전가해 ‘하는 수 없이’ 거주시설을 선택했던 장애인의 현실을 외면한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