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장애인등록증' 개편 관련 안내 문서. 김광백 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제공

‘나는 장애의 정도가 심한(심하지 않은) 장애인입니다.’

올해 7월부터 장애인들은 위와 문구가 적힌 등록증을 지니게 된다. 장애를 1~6급으로 나눴던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 정도에 따라 중증ㆍ경증으로 구분하면서 정부는 기존 복지카드를 이 같은 ‘장애인등록증’으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 등에서 이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는 당초 취지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반발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재검토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7월 장애등급제 폐지를 앞두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행정기관ㆍ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관련 교육에는 이런 내용의 장애인등록증 개편안이 포함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복지부는 기존 장애등록증(복지카드) 이름을 장애인등록증으로 변경하고, 등록증의 장애 등급을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할 계획이다.


사람에게 등급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고, 개인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해 복지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돼, 올해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이에 따라 등록 장애인을 ‘심한 장애(기존 1~3등급)’와 ‘심하지 않은 장애(4~6등급)’ 두 단계로 나누게 되면서, 장애인등록증도 함께 고치게 됐다는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가뜩이나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 방안이 표현 방식만 중ㆍ경증으로 단순화, 사실상 등급제를 유지하는 ‘무늬만 바꾼 가짜’라고 지적하는 장애인 단체들에서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김광백 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기존의 장애 유형과 급수를 표시하는 방식도 문제였지만,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면 이번 개편안은 ‘나는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다’라고 광고를 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논의하는 민ㆍ관협의체에서도 장애인등록증 개편 얘기는 나온바 없다”면서 “등록증에 이 같은 내용을 적는다는 건 모든 사람들이 한눈에 장애에 대한 가치판단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것으로 장애등급제 폐지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 장애 정도에 대한 표시를 그림문자(픽토그램)으로 해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김효진 장애여성네크워크 대표는 “시행이 코 앞이라 픽토그램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으로,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은 ‘○’로라도 표현해 달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장애인 단체의 반발에 뒤늦게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권병기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은 “장애인복지법 개정안과 시행령 등에서 장애 정도를 심한 장애와 심하지 않은 장애로 나누고 있어 등록증에도 같은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면서 “장애인 단체 등에 관련 의견을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