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을 통한 사회적 가치 확산 의미
정부, 법안 발의하고 추진 전략 제시
분야별 거점농장 지정 등 내용 담겨
사회통합과 치유, 교육으로 시야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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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대전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 경제 박람회’에서 방문객들이 무역전시관에 마련된 사회적 농장 부스를 찾아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충남 홍성군 장곡면. 읍내에 식당 한곳 없던 장곡면엔 몇해 전 식당이 하나 생겼다. 이름은 ‘생미식당’. 특이하게도 협동조합 형태의 식당이다. 사연도 재미있다. 귀농한 청년들이 농사를 배우면서 정착하도록 돕는 ‘젊은 협업농장’이 있었다. 농사일 중간에 들판에서 먹는 들밥은 늘 고민거리였다. 기껏해야 라면이나 한두가지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던 청년들은 이웃의 영농조합법인 구내식당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예 협동조합 방식으로 식당을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농촌 마을 사람들끼리 다 함께 모여 밥도 먹고 지역 농산물 소비도 하는 일석이조의 해법이었다.

경북 청송에 자리잡은 ‘해뜨는 농장’.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고 청송에 정착해 사과농사를 짓던 조옥래·윤수경 부부는 농촌살이에 관심은 있지만 기반이 없는 청년들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창업 플랫폼을 만들어 청년 창업에서 정착까지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도와준다. 2016년부터 해뜨는 농장에서 멘토링을 받던 청년 두명은 지난해 청송에 아예 정착했다. 해뜨는 농장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 시범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3년까지 사회적 농장 100여곳 목표

생산과 소비, 유통과 투자 등 경제 전 과정에 협동과 연대, 상생의 가치를 담아내려는 사회적 경제의 바람이 농촌 마을의 풍경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말 그대로 ‘사회적 농업’의 현장이다. 사회적 농업이란 농업을 통해 장애인이나 고령자, 청년 등 도움이 필요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돌봄, 교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농사일은 물론이고 건강과 재활·치유, 사회통합과 교육 등 농업이 지닌 여러 기능을 십분 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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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대전에서 개막된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 경제 박람회’ 부대행사로 사회적 농업 포럼이 열려 참석자들이 김도균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센터장의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서혜빈 연구원
정부 역시 사회적 농업 확산에 커다란 관심을 쏟고 있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연말 ‘사회적 농업 육성법’을 발의한 데 이어, 올해 3월엔 사회적 농업 확산을 위한 추진 전략도 내놓았다. 걸음마 단계인 국내의 사회적 농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예비 사회적 농장 및 분야별 거점 농장을 지정하는 방안이 주된 골자다. 특히 거점 농장은 예비 사회적 농장에 대한 자문과 현장교육은 물론이고 농가들과 지역의 복지·교육·보건 기관들 간의 연결망 형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회적 농업의 확대 재생산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이 밖에도 정부는 인력 지원과 유휴시설 활용뿐 아니라 지역 생산물이 지역에서 소비되는 푸드플랜 등 지원 사업에 사회적 농장도 참여할 수 있도록 농림사업 지침을 개정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일반 농업법인만 해당하던 청년 인턴 및 전문 인력 지원 대상이 올해부터는 사회적 농장에도 확대 적용된다. 정부는 올해 온라인 플랫폼 구축과 성과지표 개발, 지원센터 설치는 물론이고 관련 법규를 제정해 사회적 농업 기반 조성에 나선다. 2023년까지 전국의 사회적 농장을 100곳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700년 전통의 공동체 치유체계 ‘헤일’ 마을

현장의 기대는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과제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단지 양적 확대만으로는 사회적 농업의 성공을 말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복지와 교육, 고용 등 지역사회의 연관 사회제도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느냐가 사회적 농업의 성패를 가르는 참된 기준이라 할 만하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사회적 농업을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 등 복지제도와 연계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해 사회적 농업 생산물을 구매하는 관련 절차를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뿐 아니다. 여전히 일자리나 창업 등에만 방점이 찍혀 있는 사회적 농업의 시야를 더욱 넓히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정신장애인을 돌보는 통합적 공동체 치유 체계를 무려 700년 이상 유지해오고 있는 벨기에 안트베르펜 동쪽의 농촌 마을 ‘헤일’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유럽 여러 나라에선 치유와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사회적 농업을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자연과 교감하는 농업 활동 본연의 속성과 농촌의 자원을 활용해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에서 떠밀려난 취약계층을 보듬어 안는 치유와 돌봄 목적의 농장이 현재 유럽 전역에 3500여곳 존재한다. 농업과 사회적 가치가 만나 사회적 농업의 알찬 결실을 맺는 현장인 셈이다.

지난 5일 개막한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 경제 박람회’ 부대행사로 열린 ‘사회적 농업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한 김도균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센터장은 “규격화된 정신 치료 영역에선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돌봄 농업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 농사가 주는 수확의 기쁨,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센터장은 특히 네덜란드의 돌봄 농장이 농사의 소득 증대와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어 국가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는 사례를 소개한 뒤, 돌봄 농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우성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