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고용, 이와 관련해 독일은 한국보다 선진국이다. 독일이 모든 면에서 우수해서가 아니다. 한국보다 더 일찍 고민하기 시작했고, 더 일찍 다양한 길을 모색했기 때문에 독일은 한국보다 먼저 앞서 걸어가는 나라, 선진국이다. 따라서 독일에는 나름의 노하우도 해결책도 많고 앞으로 남은 숙제도 산적하다. 이에 총 4회에 걸쳐 ‘장애와 고용, 독일이 걸어가는 길‘ 시리즈를 통해 최근 독일의 장애인 고용 현황을 분석하고, 이와 관련해 독일이 우리나라에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지 살펴본다.<필자주>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나타난 사회·경제적 변화를 우리는 디지털화라 부른다. 디지털화는 인간의 활동을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변환시켜 컴퓨터나 로봇이 수행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디지털화는 노동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시장의 디지털화가 일자리를 소멸하는 일자리 킬러(Job-Killer)가 될지,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자리 엔진(Job-Motor)이 될지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가운데, 디지털화 이전의 노동시장에서도 다양한 이유로 제약이 많았던 장애인 고용의 미래가 더욱 불투명해 보인다.

장애인 고용과 관련해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서 있는 독일은 디지털 시대 장애인 고용의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을 내놓을까?

사진1: 컴퓨터 코드 관련 사진. ©unsplash사진1: 컴퓨터 코드 관련 사진. ©unsplash

노동의 종말은 없다?!

2021년 독일연방노동부가 편찬한 ‘디지털화된 노동 세계(Digitalisierte Arbeitswelt)‘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에는 디지털화 영향으로 2040년까지 약 36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고, 동시에 약 5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흥미로운 점은 사라질 일자리 중 약 170만 개는 인구변화 및 노동인구감소에 따른 결과이므로, 사실상 직접적인 디지털화 영향으로 사라지는 일자리 수(약 360만 개)와 창출되는 일자리 수(약 360만 개)가 균형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디지털화에 대한 독일의 전망은 우려감에서 기대감으로 변화하는 추세이다. 불과 약 10년 전만 해도 ‘노동의 종말‘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일자리 소멸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현재 독일은 디지털화가 인간의 노동을 최소한 일부 대체함으로써 극심한 전문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장애인 고용에 대한 전망

독일에서 디지털 시대 장애인 고용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분분하다.

일부는 디지털화 및 자동화가 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장애인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인의 일자리를 지금보다 더 많이 제한하고 장애인의 노동생활참여를 저해할 확률이 더 클 것이라 비관한다.

반면 일부는 디지털 시대에 갈수록 진화하는 로봇기술과 디지털 보조기술을 통해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의 노동생활 질이 향상할 것이고, 다양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통해 장애인의 노동생활참여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질 것이라 조심스레 낙관하고 있다.

사진2: 로봇 자동화로 제품 생산하는 모습. ©unsplash사진2: 로봇 자동화로 제품 생산하는 모습. ©unsplash

독일 최대 사회복지기구인 악치온멘쉬(Aktion Mensch)와 독일 대표 경제일간지 한델스블라트(Handelsblatt)가 2022년 공동 편찬한 '사회통합 바로미터: 노동 분야(Inklusionsbarometer Arbeit)'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 장애인 고용에 대한 통계 및 전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시장의 디지털화로 독일 장애인의 노동생활참여도는 지난 몇 년 간 증가했고, 디지털 기술이 장애인 일자리를 대체하는 가능성은 2016년과 비교해 커지지 않았다.

둘째, 장애인 근로자와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디지털화가 노동시장과 기업, 기업 내 근무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며, 이들은 대부분 노동시장의 디지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셋째, 디지털 기술이 점차 진화하고 전반적으로 소프트웨어·하드웨어의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보조공학기기가 앞으로 많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보편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넷째, 보조공학기기 및 보조공학기술의 발전, 배리어프리 디지털 기술 그리고 유동적인 근무형태(예: 재택근무, 이동식 근무) 등은 장애인의 노동생활참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다섯째, 노동시장의 디지털화는 장애인의 노동생활참여를 촉진할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약 180만 명의 장애인 중 그동안 다양한 이유로(예: 보조공학기기 지원 부족) 취업에 제약이 많았던 '숨은 인력'이 노동시장에 진출하고 동시에 사회생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향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3: 화상회의에 참석 중인 장애인 근로자의 모습 ©Andi Weiland | www.gesellschaftsbilder.de사진3: 화상회의에 참석 중인 장애인 근로자의 모습. ©Andi Weiland | www.gesellschaftsbilder.de

디지털 시대 장애인 고용을 위한 제언

'사회통합 바로미터: 노동분야' 보고서는 디지털 시대 장애인 고용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디지털 시대의 장애인 고용촉진정책은 특히 장애인 실업자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여 노동생활 참여를 도모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비장애인 실업자보다 취직을 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장애인 실업자가 디지털 시대에 더욱 소외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예: 디지털 교육 보조금 지원, 보조공학기기 지원)가 필요하다.

둘째, 기업은 근로자의 연령, 성별, 그리고 장애 유무 및 장애 정도와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디지털 기술 관련 교육을 실시하여 근로자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화된 노동시장에서 장애인 근로자는 새로운 변화에 대처하고, 공부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프레임 속에 적응하려는 의지와 능력 그리고 자신의 잠재력과 자신감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넷째, 디지털 시대에 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장애인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래에는 장애인이 자신의 신체적, 인지적 작업수행능력이 상세히 기록된 '리스크 프로필(Risk Profile, 위험 프로필)'을 바탕으로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리스크 프로필을 활용하는 경우가 없지만, 미래에 이러한 형태의 장애인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법적 장치를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독일에 거주하는 에이블뉴스 독자 민세리님께서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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