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강연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 시청각장애인으로 첼로를 배우게 된 계기와 배우는 과정, 연주 등의 이야기가 강연 속에 녹아있다. ©박관찬'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강연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 시청각장애인으로 첼로를 배우게 된 계기와 배우는 과정, 연주 등의 이야기가 강연 속에 녹아있다. ©박관찬

지금까지 강연을 가면 늘 아쉬움이 한 가지 있었다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강연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과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그래서 강연 현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거나 동행했던 분으로부터 사람들의 반응과 분위기를 전달받는 게 전부였다하지만 이 방법은 강연이 다 끝난 뒤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현장감을 즉석에서 느끼고 싶은 내 욕구를 다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지난 10일 서울가재울초등학교 교직원 대상 장애인식개선교육 연수에서 처음으로 시도해봤던 선곡해주세요는 너무 잘한 것 같다그동안 강연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진행하고 첼로 연주도 스스로 정해서 연주하고 마무리하곤 했는데이번에는 선생님들로부터 직접 선곡을 받아서 연주를 하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선생님들로부터 선곡을 받기 위해서는 통역이 필요한데가능한 직접 소통해보는 방법을 시도하기 위해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했다약간의 지원을 필요로 했지만이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서 내가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 같아 그 어떤 강연보다 가슴 벅차고 뿌듯했다.

선곡해주세요

먼저 강의안에 선곡해주세요라는 페이지를 만들어서 내가 연주할 수 있는 곡의 제목과 이미지를 넣었다그리고 강연 중에 해당 페이지가 나오기 전에 선생님들께 선곡을 받겠다고 설명했다그런 다음 스마트폰의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켜고폰의 충전기를 꽂는 포트에 무선마이크를 연결하는 usb를 연결했다.

그리고 선곡하고 싶은 선생님은 손을 들어 달라고 했다누가 손을 드는지 내가 정확하게 보이지 않으니까 이 상황에서는 지원인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손을 드는 선생님에게 무선 마이크를 전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강연 장소인 서울가재울초등학교 시청각실이 강당 수준으로 꽤 큰 규모였지만웬만한 거리까지 떨어져 있는 선생님이 무선 마이크를 잡고 하시는 말씀이 무대 위에 서 있는 내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의 어플이 잘 인식하여 문자로 변환해 주었다.

첫 번째로 선곡을 신청하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속으로 많이 떨렸다비록 어플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기 때문이다그 선생님은 바흐의 미뉴에트를 선곡하셨고 나도 최선을 다해 연주해 드렸다강의안 말미에 선곡해주세요’ 페이지를 하나 더 만들어 두었는데해당 페이지에서는 두 명의 선생님으로부터 선곡을 받았다.

무선 마이크를 통해 말하면 스마트폰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통해 글자로 변환되어 나온다. ©박관찬무선 마이크를 통해 말하면 스마트폰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통해 글자로 변환되어 나온다. ©박관찬
일정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이 무선 마이크를 들고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통해 스마트폰 화면에 글자로 변환되어 나온다. 강연 중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여 선곡을 받고 있다.일정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이 무선 마이크를 들고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통해 스마트폰 화면에 글자로 변환되어 나온다. 강연 중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여 선곡을 받고 있다. ©박관찬

이 시도가 인상적이었던 건 선곡을 하겠다고 했던 선생님들이 선곡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선곡을 하기 전에 (강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강연에 대한 쇼감부터 말씀해 주신 뒤 선곡을 하셨다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더 기대되는 앞으로의 강연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듯이첫 시도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싶다그래도 이번 시도가 앞으로 또 하게 될 강연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다계속 시도를 늘려가게 된다면 아마 나도 좀 더 여유있게 이 방법을 활용하면서 내 강연의 흐름에 녹여낼 수 있을 것 같다.

평소 혼자 진행하고 마무리하던 강연 커리큘럼에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게 되면서 강연을 듣는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박관찬평소 혼자 진행하고 마무리하던 강연 커리큘럼에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게 되면서 강연을 듣는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박관찬

앞으로 강연 시간만 충분하다면 내 욕심껏 이렇게 진행해보고 싶다선곡을 한 선생님이 내가 연주하는 동안에도 계속 마이크를 들고 있게 한 뒤연주가 끝나면 연주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는 것이다그럼 선곡하신 선생님의 소감을 현장에서 바로 들을 수 있다물론 첫 번째 시도에서는 선곡하기 전부터 이미 소감을 말씀해주신 선생님들도 계셨지만선곡 이후 소감을 말씀하실 수 있도록 해서 그분과의 소통을 마무리하는 게 정말 좋을 것 같다.

더 나아가서 강연 질의응답 시간에도 이 방법을 활용해서 직접 소통할 수도 있을 것 같다비록 선곡이든 질의응답이든 나와 소통하기 위해무선 마이크를 받기 위해 손을 드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내가 보기 어렵지만지원인력이 손을 드는 사람에게 무선 마이크를 전달하러 가는 모습을 집중해서 보면 된다그럼 나도 그쪽 방향을 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방법은 나에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이렇게도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의사소통이 반드시 을 통해서만 하는 게 아니라 방법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장애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시청각장애인의 첼로 연주를 들어보는 것을 비롯해서 시청각장애인과 직접 소통해보는 게 짧은 시간 내에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하기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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