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나영. ©한국장애예술인협회동화작가 나영.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생후 100일의 어느 날

1980년 한국은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최고의 적은 연탄가스의 침입이었다. 연탄가스에는 동치미 국물을 먹으라는 민간요법이 신봉될 때였다. 작가 생후 100일이 채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바로 그 무서운 연탄가스 즉 일산화탄소가 세 가족이 잠든 단칸방 가득 번져 가고 있었다.

가족은 아이의 울음 소리에 잠을 깼다. 콧속으로 파고드는 냄새가 연탄 가스라는 것을 알고 아빠는 곧바로 기절한 엄마와 아이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기의 울음이 한 가족을 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때부터 발육이 늦었고, 왼쪽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사지마비로 뇌병변장애가 생긴 것이다.

작가의 문을 열고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한국장애예술인협회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나영은 언제나 해맑은 표정으로 부모님을 안심시켰고,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독서를 하며 세상을 탐색하는 즐거움이 컸다. 중학교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

그래서 대학을 문예창작과로 택하였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소설은 발로 써야 할 만큼 경험이 중요하고 한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일도 버거웠다.

대학교 2학년 때 유명 소설가이기도 한 지도교수님이 ‘동화를 잘 쓴다.’며 격려해 주셔서 동화작가로 꿈을 바꿨다.

“내 인생의 책은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이라는 장편인데요. 꽤 긴 여섯 권의 장편이긴 하지만, 저를 인도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셨던 책입니다. 추천해 주실 때, 이 책을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도 이 책을 읽은 해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제목에서 풍기듯 성경 속 이야기를 토마스 만 특유의 서사로 풀어낸 것인데, 한 인간의 굴곡진 삶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2008년 단편동화 <나는 들바!>를 『아동문학세상』에 투고하여 신인문학상을 받고 안주하려던 차에 주위 선생님들의 격려와 독려로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춘문예에 다시 도전을 했는데 2010년 드디어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자로 이름을 올렸다.

눈이 유난히 많이 와서 눈 폭탄 속을 헤치고 경기도에 있는 집으로 신춘문예 작가를 취재 온 기자는 장애가 있는 그녀의 환한 얼굴에 당선 소식에 이어 두 번 놀랐다고 한다. 당시는 지금처럼 장애인 작가의 활동이 거의 없었던 때라서 나영 작가의 신춘문예 당선이 큰 화제가 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전혀 다른 이견 없이 그녀를 당선자로 지목했다. 물론 장애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를 맡은 조대현 작가는 “당선작으로 뽑은 '별똥별 떨어지면 스마일'은 탄탄한 구성으로 지혜롭고 밝은 어린이의 모습을 잘 그려 낸 수작”이라며 “작가의 장애 사실을 나중에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신춘문예 당선 이후에 작가로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깊게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 다. 사실, 가장 큰 고민이었던 건 등단 후, 생각지도 못한 인터뷰 요청과 매스컴에 드러내길 바라는 요청이 많아서 당황스러웠어요. 전, 글을 잘 쓰는 작가이고 싶은 생각이 컸거든요.”

작가의 탐험

당선 상금으로 용기를 내어 2010년 혼자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 미국에 있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미국에서도 혼자 온 그녀를 보며 놀라는 반응에 오히려 자신이 더 놀랐다.

“그때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푸른 눈을 보았 습니다. 마치 그 눈동자가 우주 같다고 느꼈 어요. 그 신비로운 감정을 어린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우주가 있고, 신비로움이 있다고 말입니다.”

작가의 탐험은 항상 큰 깨달음으로 이어진 다. 그래서 그녀는 장애와 작가에 대해 이런 소신을 갖게 되었다.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장애가 있어 장애인으로 살아가게 된 이상, 저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두와 다르지 않다, 똑같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만의 방법과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가로서 할 일은 많은 분들에게 이 다름을 인정하게 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길을 글로써 보여 주는 일이 제 임무가 아닐까 합니다.”

나영의 동화 세상

나영 작가 동화집나영 작가 동화집.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첫 장편동화  '햇살 왕자'는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 초등 교과서 교과 연계 도서로 선정될 정도로 많은 어린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햇살 왕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선의 어린 왕으로 비련하게 살다 간 단종이라는 인물에 관심이 많았고, 그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그의 이름이 ‘이홍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넓을 홍, 햇빛 위 자를 쓰는데, 어쩐지 그 이름에서 이 어린 왕의 삶을 더 잘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장편서사로 한번 풀어 보자고 도전을 했습니다. 있었던 일의 이야기를 새롭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2018년 두 번째 장편동화 '푸른 눈의 세상'은 미국 여행에서 느낀 것을 작품으로 집필한 것으로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지금으로선 누구의 말이 더 맞고, 틀리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분명한 건 많은 것들이 변하고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련은 어쩌면 상록이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한 진통의 시간일 거예요.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겪는 진통 같은 것이겠죠? 만나게 될 새로운 세상이 가까워질수록 고통은 팽창되니까요. 그래야 그곳에서 새로운 다른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고, 지경(地境)을 넓혀 가고 싶습니다. 제 운신의 폭은 좁지만, 작품의 폭은 넓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소재가 어떤 것에 국한되어지지 않는 작가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원합니다. 앞으로도 더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오랜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으니, 그 꿈을 이룬 것에 늘 감사합니다. 꿈을 이루고 보니, 솔직하게 더 큰 꿈이 생길 때도 있고 오히려 허탈함도 있지만 그 조율을 잘 하는 것도 새로운 꿈인 것 같습니다. 물론, 더 건강하게 작가로서 대성공을 하고 싶은 야망도 없진 않지만, 소소한 일상을 잘 견디고 가꾸어서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제가 쓰는 글이 거짓이 되지 않게 사는 것이 꿈입니다.”

가족 속에서

부모님과 함께부모님과 함께

제게 장애가 어려움이며 위기라 한다면, 그런 제게 가족들은 축복이었습니다. 물론, 건강하지 못한 자식과 누나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시간들이 아프고 힘들었겠지만 저희 가족들은 그렇게 어둡게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밝고, 평범한 일상을 함께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몸이 불편한 저를 위해 희생해 준 점들이 많지만 저를 맏딸로, 누나로 인정해 주며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안타까움이 큰 그야 말로 딸바보이시고, 어머니는 밝고 긍정적이신 분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엄격하실 땐 아주 엄격하신 편이셨구요.

세 살 터울 남동생도 그런 부모님의 영향으로 저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컸고, 오히려 사이가 좋은 특별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거의 모든 걸 함께했 습니다. 가족 구성원으로 제자리를 지켜 준 가정입니다. 동생이 어릴 때, 함께 학교에 등하교할 적에 제 손을 잡아 주고, 제 가방까지 들어주며 다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다투거나 원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좀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인 저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이 많았을 겁니다.

요즘 학폭 문제에 대해

아, 그때는 그런 학폭 문제, 그런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때, 더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친구들도 많았고, 교우 관계는 아주 원만했고, 선생님들도 좋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친구들은 물론 친구 부모님들까지도 저를 반겨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곱지 않은 시선과 냉정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문제가 될 만한 일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게 그때의 고민은 미래에 대한 고민, 정체성에 대한 것이 컸던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이대로도 좋다고 하는 분위기였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저희 때는 고입도 상대평가 시험으로 진학했기에 입시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편하게만 생각해 오다 막상 입시가 다가오니, 제 앞으로의 미래가 고민되었고,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제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방향을 잡는 시간 이었던 것 같습니다.

졸업식에는 생각하지 못한 상장들과 전교생들의 박수를 받고 졸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깊은 고민의 끝맺음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 생활에서 얻은 것

음,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민 끝에 저는 특수학교로 고등학교를 진학 했습니다. 관계 때문이 아닌 진로를 위해, 독립된 삶을 위해 결정했습니다. 특수학교에서 대입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특기자전형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고, 결국 문학특기자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입시 관문을 통해 명문대 수시에서부터 안 치룬 전형이 없이 다 거쳐 지방 모 대학에 문학특기자 정시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저와 참 맞지 않았습니다. 많은 갈등과 고민이 또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어느 곳에서든 얻을 것은 있는 것이 분명한 게, 그곳에서 저는 동화를 써야겠다는 방향과 글을 쓰는 구성법을 익히고 배워 왔습니다. 결국, 편입을 통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 진정한 대학 생활은 새로운 그곳에서 짧지만 행복하게 지나갔습니다.

현재 준비 중인 작품

나영작가 작품 수록 문예지들나영작가 작품 수록 문예지들

사실은, 책을 연이어 내고 조금 지친 상태입니 다. 그리고 이대로 괜찮고, 좋은 것인가? 지금은 점검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청탁 원고는 계속 쓰고 있지만, 구체적인 차기작은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 습니다.

그저 어렴풋이 다음 작품은 아동학대, 가정폭력에 대해 써 볼까 구상만 하고 있고, 장르를 좀 바꿔서 청소년소설에 도전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잘 생각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길 노력해 보겠습니 다. 이러다 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이나영/필명 나영(Nah Young)

동화작가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2021~현재 사단법인 한국아동청소년문학협회 운영이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서울신문 문우회,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원

2022 제13회 아름다운글 문학상 수상 2010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별똥별 떨어지면 스마일) 2008 『아동문학세상』 신인문학상(나는 들바!)

작품집 「햇살 왕자(2015), 「푸른 눈의 세상」(2018), 「별똥별 떨어지면 스마일」(2021), 「달리다 쿰」(2023) 작품발표 『시와동화』, 『아침햇살』, 『솟대문학』, 『열린지평』, 『어린이책 이야기』, 『열린 아동문학』, 『문학세계』, 서울신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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