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을 유튜브나 구글에서 검색하면 아직도 연관검색어에 “주작”이 뜬다. 해명 영상들을 많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해명 영상들을 보다 보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들의 기준에서 나는 어느 범주에 해당이 될까?” 나는 선천성 시신경 저형성증을 가진 저시력 시각장애인이다. 작은 글씨나 신호등 등을 보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길을 걷는 데에는 거의 문제가 없다.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시야에 점자도 배운 적이 없으며 흰지팡이나 안내견도 없는 나를, 그를 저격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나 있을까? 내가 그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며 함께한 대학 내 장애인권 동아리 활동과 1년간의 유튜브 영상 자막 번역 활동을 아무리 돌이켜 봐도 “이해할 수 없다”라는 결론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대중에게 장애란 매우 이분법적인 개념이다. “시각장애” 하면 “암흑”이 먼저 떠오르고 “청각장애인” 하면 “수화”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2001~2018년 시도별, 장애유형별, 장애등급별, 성별 등록장애인수 통계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인구 총 25만 2천 명 중 1급에 해당하는 비율은 시각장애인 인구의 12.53%인 3만 2천 명 정도이다. 그렇다고 “시각장애 1급은 전맹이다”라는 명제도 성립되지 않는다. 나도 1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장애인을 대표하지도 못하는 이 흑백논리는 나와 같은 “어중이 장애인”들을 더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이 정형화된 장애에 대한 정의에 부합하는 장애인마저도 고통받게 만든다. 특히 미디어에 나오는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이나 “대단한 사람” 둘 중 하나로만 비춰진다.

실제로 원샷한솔도 PD에게서 더 “장애인처럼” 행동하면 안되겠냐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 영상에서 밝혔다. 이렇게 극단화된 장애에 대한 이미지는 일부 사람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대중과 너무 거리가 있기 때문에 무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장애에 대한 대중의 거리감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례를 꼽자면 2021년에 일어난 휠체어 지하철 점거 사건이 대표적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주도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 관련 예산삭감에 반발하여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대중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

남들에게 피해만 끼치는 일이라며 욕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장애인들보다 더 많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노인분들이 생각났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서는 계단을 잘 올라가면서도 엘리베이터에서는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휠체어 장애인마저도 새치기해서 탄다는 동아리원들의 증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비장애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요구사항이지만 이러한 냉소적인 반응은 대중의 장애에 대한 거리감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앞서 말했던 “어중이 장애인”들이 가교역할을 하는 장애에 대한 바텀업(Bottom Up)식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도움이 시급한 중증장애인들을 먼저 도와주는 탑다운(Top Down) 방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디어에서 “더 장애인처럼” 연기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접근방식은 탑에서 오히려 더 업(up)이 되어 대다수의 중증장애인 마져도 장애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하게 만드는 역효과가 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휠체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애인의 필요는 비장애인의 편의 기능이 될 수 있다. 특히 노인 복지와 실버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연관성이 더 뚜렷해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텀업식 접근 방식은 장애의 필요와 비장애의 편의가 만나는 공통분모를 찾고 그 교집합을 늘려가며 거리감을 좁혀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3년 초 서울시에서 도입하기 시작한 “바닥 신호등”은 횡단보도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하지만 건너편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는 나로서는 이 장치가 너무나 반가울 따름이었다. 이 바닥 신호등 덕분에 나는 휴대폰을 이용해서 확대해야만 볼 수 있었던 신호등을 멀리서 맨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한적한 신호등에서도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도 직접 신호를 보며 건널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 예로는 삼성 갤럭시 S20~23 울트라에서 볼 수 있는 100배 줌 카메라를 들 수 있다. 현재 S20 울트라를 사용하고 있는 나는 이 카메라 덕분에 신호등을 더 편하게 건널 수 있게 되었고 커피숍 카운터 뒤에 붙은 메뉴판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대학 시절에도 칠판에 쓰여진 판서도 휴대폰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다 이 카메라 덕분이었다. 그런데 과연 삼성은 이러한 장점들을 염두 하고 이 기능을 만들었을까? 아마 상향 평준화되어가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돋보여 보이게 추가한 전문 사진작가용 기믹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본의 아니게도 거의 최고의 가성비를 가진 시각장애인 보조 기기를 만들어냈다. 비싼 휴대폰이 무슨 가성비냐 생각하겠지만 시각장애인용 독서 확대기 전문 브랜드 헨디와 힘스가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예를 들어 헨디 인터내셔널의 Smartlux Digital 5 모델의 판매가는 70만 원이다. 반면 당근마켓에 형성된 갤럭시 S20 울트라의 중고가는 25만원이다. 물론 시험을 볼 때는 통신 기능이 전혀 없는 모델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괜찮은 거치대, 돋보기 애플리케이션, 장애 정도에 심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HDMI 케이블 정도만 있으면 그 어떤 확대경의 기능도 따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헨디를 욕할 수도 없는 이유는 간단한 수요와 공급 개념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시각장애인은 전체인구의 0.5%도 안되는 소수자이다. 달리 말해 장애인 보조기기들은 태생적인 수요 부족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스마트폰은 전국민 모두가 사용하는 기기이고 수요가 받쳐주기 때문에 R&D 투자도 늘고 결과적으로 공급가 하락도 되는 것이다. 대중이 사용하는 기기에 접근성 기능들을 넣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기들을 만드는 개발자들은 접근성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 관련 기기와 비장애 관련 기기들을 모두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계속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향평준화되어 기믹이 중요해진 스마트폰 시장에서 이러한 새로운 시각의 피드백들도 개발자들이 좋아할 거라고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유명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선천성 저시력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맹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비장애인 친구들이 하는 인기 게임들을 보며 부러워하던 나는 인기 있으면서도 그래픽도 단순한 마인크래프트에 매료됐었다. 이후 업데이트에서 채팅 낭독 기능까지 생겼을 때 “이것이 내 인생 게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게임이 주는 높은 자유도와 다양한 게임플레이 방식들을 섬렵하여 이를 주제로 유튜브 채널도 해보고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었다.

그러던 2020년 12월 마인크래프트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한 영상이 올라왔다. “Meet a Minecrafter: Blind Minecraft”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각막백색증(Sclerocornea, 영상에서는 Cornea Sclera)을 가진 한 유튜버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앞에 있는 마을 구조물이 갈색 덩어리로 보일 정도로 안 좋은 시력을 가진 이 사람이 채팅 낭독기와 앞에 있는 블록의 이름을 읽어주는 기능을 추가한 모드(MOD, modification)를 사용하여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서 모드란 구글 크롬 브라우저의 확장 프로그램처럼 게임에 부가적인 기능을 추가하는 제3자 제작 콘텐츠를 의미하는데, 이 사람이 사용하는 모드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블록, 지형, 몬스터, 아이템 등을 추가하는 대신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을 높이는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세계 최대 모드 공유 사이트 커스포지(Curseforge)에 등록된 최초의 마인크래프트 접근성 모드인 Accessibility Plus 모드의 다운로드 페이지에 개발자 루이스 산체스(Luis Sanchez)는 모드 제작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는 제가 대부분의 블록들을 구분하지 못해서, 표지판의 글씨를 읽을 수 없어서, 그리고 제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들을 구분할 수 없어서였어요. 왜냐면 제가 게임을 크게 확대해서 플레이하거든요. 너무 커서 아이템의 인챈트(enchantment, 마인크래프트에서 무기나 갑옷 등을 강화하는 추가 옵션)도 읽을 수 없었어요.”

단순한 그래픽과 자유도 높은 게임플레이 덕분에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이 즐기기 시작했던 마인크래프트가 이 한 명의 매개자 덕분에 전맹 시각장애인들도 플레이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너지가 바로 내가 바라는 장애에 대한 바텀업식 접근 방식의 대표적인 순기능이고, 이런 사례들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하지만 이론과 소망만 있으면 사회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앞서 말한 마인크래프트 모드를 한국에 전파 및 보급하려 한다. 장애에 대한 바텀업식 접근 방식의 성공사례를 대중에 공론화시킨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이 글은 전(前) 원샷한솔 유튜브 자막 번역가 한승호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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