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인으로 본격적 활동 앞서 가진 잊지 못할 생애 첫 연주회
시청각장애 있지만 응원봉 통해 관객들과 소통, "정말 감사드립니다"
박관찬의 달을 위한 별의 연주-30
- 기자명칼럼니스트 박관찬
- 입력 2023.11.28 11:57
첼로를 들고 피아노 반주자인 형수님과 삼모아트센터 라비니아홀의 문 커튼을 젖히고 무대로 입장할 때의 그 느낌은 연주회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첼로 연주를 위해 무대에 세팅된 의자를 바라보고 걸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관객 쪽으로 시선이 갔다. 관객석이 별 모양의 응원봉이 내는 야광으로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가 있어서 누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보이지 않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또 청각장애도 가지고 있기에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지, 연주하는 곡을 따라 부르는지 듣지 못한다. 그렇기에 관객들과의 조금이라도 원활한 소통을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 응원봉이었는데, 내가 입장하는 그 순간부터 관객들이 응원봉의 불을 켜준 것이다.
그렇게 나의 생애 첫 연주회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이자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준비과정 ‘마음으로 연주하는 시청각장애인 첼리스트의 창작활동 준비’ 사업 공유회가 시작되었다.
연주회에서 연주한 곡 중 어떤 곡도 허투루 준비한 게 없을 만큼 하나의 곡에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냥 막연하게 연주만 하지 않고 스토리텔링을 곡에 가미시켜 ‘이야기가 있는 연주회’가 될 수 있도록 알차게 구성했다.
1부에서는 박관찬 소개, 시청각장애 소개, 사업 소개, 첼로를 배우게 된 계기와 레슨을 받는 과정 등을 설명하면서 ‘사랑은 늘 도망가’, ‘인생의 회전목마’, ‘You Raise Me Up’을 차례대로 연주했다. 그리고 대구 경북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두리둥둥 난타’팀이 초청공연을 펼쳤다.
2부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무대로 준비했다. 어렸을 때 배웠던 피아노를 그동안 조금씩 연습해서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했고, 언젠가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첼로 연주로 듣고 싶다고 했던 ‘He'll Have To Go’를 두 번째 곡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비밀리에 준비했던 연주회 메인곡은 ‘자이츠 협주곡 5번 1악장’이었다. 이번 연주회에서 가장 선보이고 싶었던, 어쩌면 내가 앞으로 첼리스트로서 한 단계 발전하거나 깊이 있는 연주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게 해준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자이츠 협주곡 연주가 끝난 후 관객들의 반응을 보노라니 가슴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책 출간, 다음 연주회 계획 등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앵콜 곡으로 ‘사랑으로’를 연주했다. 일부러 천천히 연주했는데, 많은 관객들이 따라 불렀다고 한다.
사실 자이츠 협주곡은 지금까지 내가 접해본 곡 중에서 가장 길고, 가장 어려운 곡이었기 때문에 연주회 시작 전 리허설에서까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연주해내지 못했다. 연주회에서 분명히 실수할 거라는 걸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연주회 두 번째 곡이었던 ‘인생의 회전목마’에서 실수가 나왔다. 정말 당혹스러웠다. 첼로 선생님 말씀대로 실수해도 멈추지 말고 끝까지 연주했지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연주에서의 실수만 아니라면 미련도, 후회도 없는 그런 연주회였다. 내가 준비했던 연주와 이야기들은 모두 했고, 응원봉을 활용해서 관객들과 호흡했다. 누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이름을 불러 보기도 했다. 동명이인도 불러 보고, 아이들 이름도 불러 봤다. 내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관객석 어디에선가 불이 켜질 때마다 정말 고마웠고 뿌듯했다.
그리고 어떤 곡을 연주하겠다고 이야기하거나 연주가 끝났을 때, 또는 어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누가 먼저할 것 없이 관객들이 응원봉의 불을 켜주었다.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나를 위해 관객들은 박수 대신 응원봉의 불을 켜는 것으로 내게 마음을 전해줬던 것이다. 만약 ‘올해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내가 연주회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생각해낸 응원봉을 추천하고 싶다.
삼모아트센터 라비니아홀이 휠체어석 포함 100석 정도인데, 첫 연주회라서 관객이 몇 명이나 올지 선뜻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50명 정도만 와도 충분히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전 신청에서는 100명을 넘겼고 실제로도 좌석을 거의 채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와서 응원봉의 불을 켜 주셨다.
시간이 흘러 훗날 2023년을 돌아 본다면 주저없이 11월 24일의 연주회를 꼽을 것 같다. 특별하면서도 행복했던 단 하루, 그 하루를 위해 준비하고 연습했던 시간들이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장애예술인으로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니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앞으로 또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어떤 곡에 도전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할 것 같다. 청년은 오늘도, 내일도 첼로를 연주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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