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서목하의 노래를 누가 불렀을까 궁금했습니다. 박은빈씨가 직접 불렀다는군요.

치, 연기도 잘해, 노래도 잘해. 게다가 예쁘기까지 해. 신은 절대 공평하지 않네요. ‘바아그은.... 비이이인... 너어----?’ 너, 말미잘, 해파리, 돌멍게...무슨 뜻이냐구요? 잘 났다구요.

탤런트들 노래를 들어보면 다 실력들이 뛰어납니다. 감동이 있습니다. 연기를 잘할수록 노래도 잘합니다.

왜 그럴까요? 감동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연기로 감동시키는 거나, 노래로 감동시키는 거나 서로 통하는 것이 있어서입니다.

극중 서목하는 15년간 무인도에서 살면서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기는커녕, 그런 존재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찌 나오자 마자 윤란주의 노래를 립씽크로 윤란주 본인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까요?

서목하가 나뭇가지에 비치는 햇살에 감탄하고 자신 손을 뻗어 새로운 햇살을 만들어 내며 감탄하고 있다. ⓒ무인도의 디바서목하가 나뭇가지에 비치는 햇살에 감탄하고 자신 손을 뻗어 새로운 햇살을 만들어 내며 감탄하고 있다. ⓒ무인도의 디바

12회 최종회에 답이 나옵니다.

그녀가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을 발견하고 아름답다라고 감탄합니다. 여기서 멈췄다면 그냥 일반인입니다. 그녀는 자기 손을 들어 손가락을 움직여 해를 가렸다 나타나게 했다 하며 새로운 현상을 창조했습니다. 그녀에게 경이가 되었습니다.

자기 손 스스로 만들어내는 손가락과 햇살과 나뭇잎의 조화에 그녀는 미소짓습니다. 그 미소가 관객을 또한번 감동 짓게 합니다. 감동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신은 절대 완제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습니다. 사람의 손길을 보태게 합니다. 그래서 경이를 만들어냅니다. 목하가 그냥 햇살과 나뭇가지가 만들어 내는 신비에 감탄만 했다면 그건 그냥 무인도의 나뭇가지였을 것입니다. 햇살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목하의 손가락이 햇살을 살렸습니다. 그때 목하가 느낀 경이의 감정은 목하가 노래 잘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재능은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몸으로 무언가 보탤 줄 아는 것이 참다운 재능입니다. 그 재능이 그를 가수로 만들었습니다.

가수, 탤런트, 화가, 작곡가, 소설가 등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경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 경이는 자신의 감정을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경이를 타고 자신의 존재를 우주로 확장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서른살 되던 해에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경기를 보러 갔다고 합니다. 외야석 잔디밭에 누워있는데 외국인 무명선수가 가볍게 방망이를 휘둘렀고, 공이 방망이에 맞는 순간 상쾌한 소리와 함께 파란 하늘 위로 공이 치솟고 이곳저곳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때 무라카미 하루키를 향해 하늘에서 무엇인가 천천히 내려왔고 그는 아무 맥락도 없이, 근거도 없이 문득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그는 만년필과 원고지를 샀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이게 확장 아닐까요?

야구장에서 야구공에 맞은 사람이 무라카미 하루키 뿐이었을까요? 나뭇가지 사이로 빛나는 햇살을 본 사람이 서 목하 뿐이었을까요?

자신의 몸으로 보태서 경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꾼’이 됩니다. 주관적인 것이므로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경우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하다가, 어떤 사람은 꿈 속에서, 어떤 사람은 동료들과 생활을 하다, 어떤 사람은 대리운전을 하다가, 어떤 사람은 취재현장에서.

우리는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재능이 선천적인 것이냐 후천적인 것이냐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저는 선천적이라고 믿습니다. 재능 자체를 가지고 태어나서 선천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주로 자신의 존재가 확장되는 경이를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느냐 못갖느냐인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갖고 어떤 사람은 못갖고를 놓고 불평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진 사람에게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공인에게 더 많은 책임이 따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누가12:48)

되지도 않게 잘난 체를 했으니 썰렁 개그로 마무리합니다.

저는 살면서 잃은 것도 분명 있지만 이리 저리 따져보면 받은 게 더 많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껌팔이 주제에 무슨 소리하는 거냐고요?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데 공짜로 몇 번이고 볼 수 있는 복을 받았지요. 에이블극장에서 껌을 팔며 먹고 사는 복을 받았지요.

다른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나의 감정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비교해서 느끼게 하는 기회의 복을 받았지요. 걍, 내가 많은 복을 받았다하면 복이 정말로 제게 쏟아진 것입니다. 내가 받은 게 많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습니까? 시비를 건다고 내가 받은 게 어디로 휘발할까요?

제 몸을 싸고 있습니다. 제게 살쪘다고 비난하지 마십시오. 블링블링 제게 붙은 복이 슬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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