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사이판 한달 살기를 끝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못 가서 너무 몸이 근질거렸다. 여름에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개인적인 집안 일이 많아서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중순에 공무원 퇴직, 10월 말에 대구로 이사를 했기에 여행을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실 퇴직금과 수중의 돈을 모두 긁어 모아 대구 전세금을 마련하느라 돈도 없었다.

​하지만, 첫째 현이의 초등학교 졸업, 내 퇴직 기념으로 너무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카드 빚을 내서라도 가고 싶을 마음만 굴뚝이었다. 정말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은 또다시 사고를 치고 말았다.

2003년, 처음으로 휠체어 타고 혼자 갔던 홍콩을 딱 20년 만에 내 소중한 보물들 현혜와 가려고 한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른다며... (맨날 마지막이래~ 내년엔 둘째 아혜의 졸업 기념 여행을 갈꺼면서..ㅋㅋㅋ) 현이의 졸업 여행, 나의 퇴직 기념 여행은 지금이 아니면 없을 거라는 합리화를 하며 말이다.

가고 싶었던 태국 치앙마이. ⓒ Getty Images가고 싶었던 태국 치앙마이. ⓒ Getty Images

홍콩을 가게 된 건, 사실 난 태국 치앙마이 한달살기, 베트남 나트랑 한달살기를 가고 싶었다. 아무리 여행에 미쳐 있는 나지만, 수중에 돈이 없고, 심적으로도 너무 쪼달리는 상황이라 한달 살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든 현혜가 이제는 물놀이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휴양을 주로 하는 곳은 이제 할 게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국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중국 본토는 너무 추워서 안 될테고, 따뜻한 중국은 대만, 홍콩이 있는데 대만은 현혜가 7~8살 때 갔었기에 홍콩 밖에 없었다.

20년 전, 2003년에 갔던 홍콩의 모습. ⓒ 박혜정20년 전, 2003년에 갔던 홍콩의 모습. ⓒ 박혜정

물론 홍콩이 물가가 비싸서 일주일을 가더라도 비용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의 돈이라도 아쉬운 상황이라 한달 살기보다는 적은 비용이 드는 짧은 여행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 마음이 들자 홍콩으로 가는 항공권과 숙소를 무작정 예약부터 해버렸다.

홍콩으로 가는 직항은 인천 공항에서는 당연히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외에도 저가항공이 많다. 가까운 김해 공항에는 제주항공에 홍콩 직항이 있었다.

20년 만에 가게 될 홍콩의 모습. ⓒ Getty Images20년 만에 가게 될 홍콩의 모습. ⓒ Getty Images

(이전 글) '김해공항에 직항이 있어도, 휠체어 타고는 여행갈 수 없다?'

앞에 썼던 글에서 말했듯이 김해공항은 리프트카가 안되면, 직항이 있어도 비행기 탑승이 불가하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진에어, 에어부산이 아닌 항공사는 리프트카가 없기 때문에, ​직항이 있어도 나같이 거동이 불가한 중증 장애인은 탈 수가 없다. 내 돈 주고도 비행기를 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리프트카가 고작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힘들게 인천공항을 가야 해서 화가 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나를 업어줄 보호자가 없고, 리프트카가 없어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인천에서 홍콩으로 가는 수 밖에...

​일단 제일 싼 항공권을 검색했다. 홍콩 익스프레스와 홍콩 항공을 발견했다. 그런데 희안하게 홍콩 익스프레스가 저가 항공인데, 뭔가 마지막 결제 단계에서 따져보니 더 요금이 비쌌다. 결국 홍콩 항공으로 예매했는데, 낮 출발 - 오후 도착이라 시간도 좋고, 가격도 더 저렴해서 오히려 좋았다.

비행 시간도 좋고, 제일 저렴했던 홍콩 항공에서 항공권을 예약했다. ⓒ 박혜정비행 시간도 좋고, 제일 저렴했던 홍콩 항공에서 항공권을 예약했다. ⓒ 박혜정

그러나 문제는 휠체어를 탄다, 리튬 배터리가 있는 전동 바이크가 있다고 항공사 고객센터와 소통이 되어야 한다. 국제 전화를 걸기도 어렵고 해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처음 메일을 보내고 3일 후에 답장이 왔다. 세세한 정보를 써서 답장을 달라고 했기에 두 번째 메일을 보내고 난 뒤에는 지금까지 답장이 없다.

​이제 2주 정도 밖에 안 남았는데, 고객센터에 답을 꼭 받아야 하는 큰 산이 남았다. 정말 안되면 홍콩 고객센터에 국제 전화라도 해서 안되는 영어로 부딪혀 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취소할수도 없고, 그냥 밀어붙어서 가야 하는 홍콩 여행이기 때문이다.

홍콩 항공 고객센터에 파파고를 돌려 보낸 이메일 내용. ⓒ 박혜정홍콩 항공 고객센터에 파파고를 돌려 보낸 이메일 내용. ⓒ 박혜정

물가 비싼 홍콩에서 숙소는 그마나 저렴하게 1박에 10만원 초반 대로 구했다. 호텔 측에 문의하니 장애인 객실도 있다고 해서 배정해달라고 했다. 단지 후기가 크게 좋지 않아서 걱정이 된다. 숙소에는 크게 기대하지 말고 가야할 것 같다. 어떻게든 여행하고 오면 되니까.

​​12월부터 시작한 재택근무도 여행가서 원활하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무대포인 성격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부딪혀 보려고 한다. 가서 고마 현혜랑 재밌게 여행하고 오자고 마음 먹었다. 난 현혜와 소중한 시간 보내고 오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말이다. 죽기 전까지 나의 목표도 몸이 더 젊고,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다닐 수 있을 때 전세계를 현혜와 행복하게 여행하는 것이다.

​물론 여행 가지 않고 돈을 모으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는 것도 맞다. 나도 정말 더 많이 벌면 좋겠다. 마음껏 여행다닐 수 있을 만큼 벌어서 돈 걱정 안하고 여행다니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게, 우리 현혜와 가족이 힘들어도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가진 여행을 하며 끝까지 살고 싶은 마음 뿐이다.

휠체어를 타는 엄마지만, 현혜와 함께 전세계를 행복하게 여행하고 싶다. ⓒ Getty Images휠체어를 타는 엄마지만, 현혜와 함께 전세계를 행복하게 여행하고 싶다. ⓒ Getty Images

좀 이기적인 성향을 가진데다 극도로 예민한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 현이가 가끔 심쿵한 얘기를 한다.

"엄마 나랑 죽을 때까지 여행 다녀야 해~"

내가 죽기 전까지 돈 벌어서 엄마 아빠 전원 주택 마련해 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네가 죽기 전까지...?!

​현혜가 죽을 때까지 나는 꼭 살아 있어야 할 판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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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